"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그 당시에는 나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다.

내가 만약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찢기고 끓길 때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었더라면

당연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과거 5백 생 동안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아도 나라는 생각,남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여의고, 부처의 최상의 지혜를 일으키느니라."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사상은 중생을 철저히 사랑함으로 일체의 相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러므로 몸을 마디마디 찢길지언정 상대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철저한 대자대비심을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생각이 잠시에 그치지 않고 5백 생을 내내 실천했으며, 일체 상을 일으키지 않는 가운데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는 말씀이다.  즉, 사상(四相)을 여읜 가운데 지혜롭게 이웃을 염려하라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진정 그러하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들 인간 삶을 살아간다면 매사가 화평과 즐거움속에

성취되어질 것이다. 이는 그 마음이 곧 부처님 법대로 동하고 정하기 때문에, 인과법(因果法)에 따라 그 결실도 정상이요,

평화스럽게 맺어지는 것이다. 반면 나 개인의 안위와 영화만을 누리려고 현세적인 물질만을 앞세운 채 일을 추진하면

그 결과는 불행과 불안,  원망, 마찰, 갈등만을 가져올 뿐이다.

 

   물욕이 빚은 참혹상을 우리는 숱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이웃간의 불화와 사회에서의 강탈을 넘어 부모형제까지

살육하는 이 지옥 아닌 지옥의 아비규환을 말이다. 나라 전체에 불신풍조가 팽배하다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불특정 다수를 동반자요,

동사섭하는 동료, 이우, 협력자로 보지 않고, '적'으로 규정, 상호반목의 감정만 갖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고도 어찌 남북통일을 기대할 수 있으며, 동서화합과 동포화합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헛된 욕심이 낳은 물욕은 인간만사를

사상누각 위에 올려 놓은 셈이다. 아니 그 자체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과 진배 없어 부작용과 악폐만 파생시킬 뿐인 것이다

 여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창조의 힘이 발휘될 수 있겠는가, 나라와 민족이 생명력과 창의력을 상실하고  현실 안주, 쾌락 추구,

물질의 노예가 되면 아닌 말로 '제2의 식민지 국민'신세를 또 다시 당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며 경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강한 정신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신식민지통치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우려다.

역으로 정신문화가 물질에 앞서 융성발전하면 주변 강대국, 곧 미, 일, 중, 소 제반 열강들을 오히려 우리의 앞마당으로 삼아

민족의 기상을 만방에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 강토를 지키고 얻기 위해 자신의 부귀영화와 공명심, 나아가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린 서산대사, 백범선생 등 민족 선각자들의 뜻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단코 부처님께서 베어져도

남을 원망하지 않는 대자대비심에서만 생성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주위 물질문화에 걸맞는 , 아니 앞서가는 정신문화 발양을 위해 힘써야겠다.

민족의 앞날에 희망이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의당 전사회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팽배한 물질문화가 이 나라를 지배한 것은

사실 외래문물을 주체성 없이 받아들인 결과다. 해방 이후 들어온 구미의 문물은 인간성을 잃게 했으며 생명경시 풍조까지 일으켰다

주관없는 서양문물 수용은 그 장점(의식주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민족전통 문화의 황폐화를 초래한 것이다. 그 폐해는급기야

종교계에도 급속히 확산돼, 대작불사(大作佛事) 위주의 불교, 헌금 강요의 기독교, 왜색종교 등 외래사상의 무분별한 수용 및

범람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제 청정한 마음 위에 아름답고 품격 높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창달시켜야 한다. 곧 주체성을 회복한 터전 위에 

불국토(佛國土)를 실현시킨다는 말과도 합치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전제 조건이 붙는다. 바로 相을 여의어야 한다 

 금강경(金剛經)의 교훈처럼 상을 버려야만 이같은 소원도 성취될 수 있다.  이 상은 자기 개인의 탐, 진, 치 삼독(三毒)을

여의는 노력도 있지만, 더 넓게는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사상적 상을 버려야 하고, 미국이다 소련이다 하는 의타작 상을

버려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생각하되 생각하지 않는 그러한 자세가 요구된다. 미, 소 양대국과 교류하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역활을 하되 과도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 상황 등을 지혜롭게 활용하면 된다.  나라와 나라끼리도

잘못 처신(외교)하면 개인과 개인처럼 분쟁과 파국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점 특히 위정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이 사회와 이 시대에 공헌할 바가

무엇인가를 재삼 재사 고려해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이 대한민국이라는 반석같은 집터 위에 정치, 경제,사회,종교의

기둥들이 굳게 세워져 아름답고 튼튼한 집을 지을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종교인들이 자성해야 한다. 종교인은 많은데 이들이

진리를 진리대로 행하지 않고. 사육 충족의 도구로 삼아 기업화,정치화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종교를 위한 종교처럼 무서운 해독을 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종교와 성직자 신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헛된 망언 망동은

국가 사회를 좀먹고 무너뜨리는 백해무익한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종교인을 위한 종교는 식민지 시대에나 가능힌 것이다

철저히 이용되고 철저히 자기 배만 채우는 식민지 시대의 종교인 아닌 종교인들을 우리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들 종교인들은 양의 가죽을 쓰고 그 얼마나 동족을 괴롭혔으며 그들이 뿌린 악의 씨앗은 오늘에도 자라나  이 시대에 가치전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정치인을 위한 정치, 기업가를 위한 기업경영, 언론인을 위한 언론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뒷전에 몰아세운 채 특정 이익집단만을

위한 정치' 경제' 종교 등은 진정 무가치한 존제인 것이다.  그럼 바르게 하나로 휘향하는 길은 무었인가?

그것은 도덕과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나 개인이 비록 불이익을 당할지언정 대중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보시행을 해야되는 것이다.

단, 가식은 절대 금물이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마음이 가는 길로 행해야만 바른 회향이 될 수 있다

 

 해방 이후 일본이나 대만은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 국가들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는 그만큼 우리가 하나로 뭉치지않았다는 증거다.  베타와 질시, 아집을 꺽고 이제는 공의(公義)를 위해 하나 되어야 할 때다

이렇게 나를 부정하면서 대승적 차원의 일에 힘을 배 가한다면 정신도 밝아지고 자연히 개인의 건강도 넉넉해지는 것이다

물질과 사욕은 허수아비같이 헛된 것이거늘.........

우리의 정신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심과 평등, 민주, 양보, 자비, 정직, 근면, 주체성 등의 8가지가 충족되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무대로 한 이같은 조건실현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웅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가가 처한 환경과 현실을 생각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심을 심어줄 때 고결한 정신문화와 가치있는 물질문화가 꽃필 것이다

나 한 사람의 노력과 검소한 생활, 그리고 보행(普行)이야말로 남에게 복을 줄 수 있는 길이다

탐,진,치 중 특히 욕심, 곧 탐을 경계하면 맑은 정신인 불성(佛性)이 살고 덕을 쌓는 길이 될 것이다.

 

《 아래 글을 취하기 위해 긴 윗글을 읽어 이해를 돕기로 했다. veroni 생각 》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

인연이 닿는 날에는

갚음을 스스로 받으리라.

아무리 하찮은 씨라도 뿌려지면

인연 닿는 곳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니

뿌릴 때를 놓치지 말아라

때를 놓치면 어떻게 열매를 얻으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

배고픈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있는 대로 그를 대접하라.

 

[ 자업자득 (自業自得) :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모두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

  자작자수(自作自受) : 내가 뿌린 씨의 열매는 내가 몸소 거두게 된다. 내일 웃는 것도 눈물 짓는 것도

                                       모두 오늘 내가 짓고 있는 業의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