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천변을 걸으며

어찌도 이리 다정하게

내 몸에 잠겨드는지

나는 애초 그것이 내 것인 줄 알았네

지는 것들을 보며

끈적이는 빗물이 꼬득꼬득 말라비틀어지도록

이처럼 황홀했던 저녁

내겐 없었다고 말해주었네

 

불 켜진 집들 사이에서

불 커진 집이 오랜 궁리에 빠져드는 동안

나는 그만

따라가고 싶었지

지는 것들의 뒤꿈치에저리 아름다운 한가로움

 

내 것이 아닌 것들로 행복해지는 저녁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가로등 불빛이 말해 주지 않아도

내게 구역질하지 않는 것들만으로도 얼마나 선한가

선한 것들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이제 나는 무엇을 더 내놓을 것인가 생각하는데

 

꽃은 지거나 지지 않거나

너는 가고

나는 남는구나

 

나는 남지 말아야 했다

 

 

이승희 / 1999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