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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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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33 | 2015-12-18 |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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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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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23 | 2015-12-18 |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 ―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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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 //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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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041 | 2015-12-07 |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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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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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56 | 2015-12-07 |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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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 이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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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30 | 2015-11-28 |
봄날에도 가끔은 하늘이 푸르지 않니? 구름도 웃음지며 가끔은 쉬었다 간단다 물빛 고운 네 옷자락에 눈물 쏟을 여름날은 아직 멀었어 아직은 개나리 진달래 겨드랑이 간지름에 눈물짓고 있구나 지금은 봄이야 가지마 아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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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빛깔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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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13 | 2015-11-22 |
봄에 온 철새들은 봄 한철 제 목청껏 운다 새에게 울음은 짝짓고 새끼 기르는 데 불가분 관련이 깊겠거니 그처럼 애간장을 녹이는 일이 어디 있으랴 비바람 숭숭한 둥지 하나 틀어놓고 사랑한다, 내 아이를 낳아줘, 여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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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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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95 | 2015-11-22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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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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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964 | 2015-11-22 |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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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고 싶은 자리 //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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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51 | 2015-11-22 |
숲길 옆 뉘어놓은 나무토막 위에 어떤 아저씨가 앉아서 쉬고 있다. 나는 목례를 하며 지나친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사람은 없고 그 나무토막 자리만 환하고 고요하다. (아까는 사람만 보았던 것이다) 매운 겨울 오후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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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사랑은. 외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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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55 | 2015-11-17 |
사랑은 네가 네가 아니고 내가 내가 아닌 것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리운 그대 있는 것 겨울나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잎 떨어진 자유입니다 가지만 앙상히 마르고 마른 추운 바람 씽씽 기다리는 겨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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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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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821 | 2015-11-10 |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엶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꽆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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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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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912 | 2015-11-08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가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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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 // 자크프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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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225 | 2015-11-08 |
오, 기억해주오 우리가 연인이었던 그 행복했던 날들을 그 시절 삶은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뜨겁게 타올랐다네 죽은 잎들은 하염없이 쌓이고 너도 알리라, 내가 잊지 못하는 걸 죽은 잎들은 하염없이 쌓이고 추억도 회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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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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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017 | 2015-11-08 |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은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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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의 죽음 // 안톤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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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 | 2109 | 2015-11-06 |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않는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위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글라스로 <코르네빌의 종>을 보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그는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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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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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1914 | 2015-11-03 |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 분 그래, 5 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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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말에는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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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889 | 2015-11-03 |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낙엽 마르는 냄새가 나다. 가을 청무우밭 지나서 상수리 숲 바스락 소리 지나서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오소소 흔들리는 억새풀 얘기가 들린다. 추억이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마냥 그립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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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김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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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325 | 2015-10-13 |
눈물겹도록 사랑을 하다가 아프도록 외롭게 울다가 죽도록 배고프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짐 다 내려놓고 한 줌의 가루로 남을 내 육신 그래, 산다는 것은 짧고도 긴 여행을 하는 것이겠지 처음에는 나 혼자서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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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색깔//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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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 2014 | 2015-10-02 |
나이라는 건 저절로 도착하는 정거장 같은 건데 나는 자꾸 빠른 열차를 타고 싶었다. 빠른 열차로 60이라는 나이에 도착해버리고 싶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마음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상처받는 시간을 모른 척하고,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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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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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 | 1991 | 2015-09-02 |
한낮의 꿈 눈부신 빛의 그늘을 찾아 그리고 덜 그늘 진 곳, 웅크린체 얼마나 지난건가 나는 숨쉬고 있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삶은 죽기위한 준비중이라면 죽은듯이 잠드는 것이라면 ....................- 더운 여름날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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