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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2020.11.22. 서울주보
김상우 바오로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언젠가부터 갑을관계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보통 계약서에서 주도권을 지닌 쪽을 '갑' 반대쪽을 '을'이라고 기재함에서 유래합니다. 갑을관계 문화는 위아래를 철저히 구분해 '갑'은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판단되는 '을'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을'은 '갑'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맞춰야 한다는 문화입니다. '갑질'과 반대되는 '을질'도 존제합니다. '을'이 상대적 약자임을 역이용하여 '갑'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고 '갑'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일 성경말씀에서 갑을관계로 잘못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제1독서(에제 34.11-12.15-17)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에제 34.17)고 말씀하십니다. 복음(마태25.31-46)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세울 것이다". (마태 25.32-33)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을 기점으로 전례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교회는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을 경청합니다. 최후 심판의 핵심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와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를 기준으로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여정을 어떻게 걸어왔는지에 따라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인 '을'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최후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갑을관계로 따지자면,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을'로 사셨던 분입니다
제2독서 (1코린 15.20-26-28)에서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1코린 15.28)라고 바오로 사도는 선포합니다. 우리를 위해 죄 없으신 분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돌아가셨기에,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세상에 밝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참된 '을'로 사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을'로 산다는 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립니다. '을'로 산다는 것은 억울합니다. '을'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을'로 산다는 것은 기쁨이며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서 '갑'으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을'로 살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