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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앗? 이런 곳에도 성지가 있었네? 그런데 현양탑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
"어!!! 교리 시간에 배웠던 순교자들이 다 이곳에서 순교하셨구나!!!"
한때 노숙자의 천국이라고 불리던 서소문 공원 한쪽, 서울역에서 문산을 향해가는 경의선 철길 옆에 있는 서소문 성지를 순례하는
신자들 대부분의 반응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잊혀진 곳, 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곳이 서소문 성지입니다
서소문 성지는 박해 시대 한국 교회 평신도 지도자 대부분과 많은 신앙인이 피를 흘린 한국 교회 최대의 순교성지입니다
선교사의 도움없이 학문적인 노력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실천했던 초대 교회 신앙인들이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내어놓은 서소문 성지는 세계 교회 안에서 한국 교회의 특별함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성지입니다
서소문 성지는 원래 조선 시대 공식 사형 집행장으로,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과 최종 사형 판결을 내리는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다는 편의성,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칠패시장`이 있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선
시대 대부분의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이러한 서소문 밖이 천주교인들의 순교지로 이용된 것은 선유박해(1801년) 때부터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 베드로
순교자와 `백서`의 주인공인 황사영 알랙시오를 비롯하여 초대교회를 이끌어가던 `하느님의 종` 최창현 요한(신도회장), 정약용
아우구스티노(신도회장), 강완숙 골롬바(여회장) 등 평신도 지도자들과 많은 신앙인이 이곳에서 피를 흘려 하느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순교의 행열은 기해박해(1839년)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기해년 박해 동안 한국교회의 대표 평신도 지도자 성 정하상 바오로와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 김효임 골롬바, 김효주 아네스 동성 자매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앙인이 이곳에서
순교하셨으며, 그 참상이 너무 가혹하여 칠폐시장의 상인들마저 치를 떨며 항의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에 형 집행지가 임시로 당고개로
이동할 정도에 이르렀던 곳입니다.
그 후 병인박해(1866년)로 인하여 서소문 밖 네거리는 다시 한 번 순교자의 피로 물들여져 승지 남종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많은
신앙인이 순교하셨습니다. 이렇듯 서소문 성지(聖址)는 한국 천주교회의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성인과 하느님의 종` 27위가 탄생한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의 성지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서소문 성지는 `서소문 공원`내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과 견인차량 보관소
위에 세워진 조촐한 형양탑으로만 기억되고 있습니다
순교자 성월인 9월을 맞이하여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며 잊고 지냈던 서소문 성지를 순례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으시길 기도합니다
※ 서소문 순교성지 오시는 길 ※
:: 전철 2.5호선 충청로역 4번 출구 직진 - 한국경제신문사 앞 횡단보도 건너 - 서소문 공원 안
:: 전철 1.4호선 서울역 2.3번 출구 - 염천교 방면 직진 - 서소문 공원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