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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는 경쟁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떠날 때까지 경쟁은 계속됩니다.
더 좋은 외제분유, 영재교육,족집게 과외, 명문대학, 대기업, 고급 아파트, 실버타운, 화환이 많은 장례식, 경쟁속에 살다보면 자기를
잃어 버리기 쉽습니다. 늘 과분한 것을 추구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남의 명예를 가로채는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자기가 아닌 과대 포장된 '허구의 나'를 살게 됩니다. 이렇게 허구의 나를 계속 연극하려면 긴장과 불안이 떠나지 않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이 연극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경쟁을 위한 무장을 해제하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기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원래의 그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하고 그 모습에 맞는 일을 해야 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다만 사랑하려고,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인정하고, 자기를 사는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알듯이 남도 알아보지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몰라 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흔들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그 기회를 이용했으면 그리스도 행세를 할 수 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슴치 않고 고백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듯이, 참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겸손은 마음의 눈을 맑게 하여 세상의 진실과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합니다. 욕심에 눈이 흐린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자기들 옆에 서 계서도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지만 겸손한 요한은 예수님이 군중속에
파묻혀 서 계셔도 그분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은 겸손의 눈입니다. 겸손은 본연의 자신을 찾는 일이고 본연의 자신을 찾다 보면 경쟁 속에 파묻힌 우리 삶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알게 됩니다. 사랑의 샘이신 예수님이 오셔야 우리 삶이 살만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겸손하게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열립니다.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자선(慈善)이라는 말 안에는 자비로움과 선함, 그리고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자비롭고 선한 이웃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자기 죄를 보속하고 예수님의 일을 돕는 것이 바로 자선입니다. 자선은 자기에게, 이웃에게, 예수님께 참 아름다운 성탄선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부(寄附)문화를 돌아보면 철강왕 카네기의 말이 생각납니다
"부자로 살다가 부자로 죽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잘 모으는 것보다 아름답게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고찬근 루까 산부 // 서울대교구 성소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