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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자기의 처지와 안고 있는 문제들,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람들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과 다른 사람 등등 ....
금연에 어떤 분은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한동안 세상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과 물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만
나뉘어 보였다고 합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열심한 신자와 쉬는 교우들로,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별 되기도 하겠지요.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이 지켜야 할 제1과 제1장일 텐데, 저는 그저 '다급할 때만 기도하는 사람'
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신앙인의 생활에서 가장 빈번히 듣고 말하는 단어는 사랑과 은총과 더불어 기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단어들이 습관적으로 성찰없이 쓰임으로써 그 본질과 의미에 무감각해지기도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기도문을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읆조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기도하지 않는 무반성적 삶에 대한 자각으로 가슴이 서늘해지곤 하지요
기도란 자기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대화라고 하고 우리의 삶자체,존제 자체가 이미 하느님을 향한 봉헌이고
기도가 아니겠는가 하는 포괄적 해석도 있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직업인인 제게는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문장을 쓰고 싶다거나 지문 사이의 행간 즉 침묵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가당치 않은 꿈이 있습니다 언어의 불안전함과 교활함, 표현의 불가능성에 때때로 답답함과 절망감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형용사와 부사와 추상명사들로 본질을 가리고 빈약함을 감추면서 종내는 그 숲에서 길을 읽고 마는....
외국의 유명한 앵커가 마더 데레사께 어떻게 기도하시냐고 물었더니 수녀님께서는 '그저 듣습니다' 하셨답니다
뒤이어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하는 물음에 '그분께서도 그저 들으시지요' 라고 대답하셨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만 크게 허를 찔린 기분이었겠지요
이즈음 러시아 순례자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동방 정교의 신자인 그는 참된 기도를 가르쳐 줄 스승을 찾아 러시아 곳곳을 다니던 중 한 수도자로부터 예수의 기도라 불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문을 배웁니다 그는 그 짧고 간단한 기도문을 반복해 바치면서 마침내
마음의 문이 열리고 고된 순례길에서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한층 믿음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장황한 말, 말, 말의 숲에서 헤매임 없이 곧장 주님께로 가닿는 화살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믿음의 고백과 간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기도라 느꼈습니다.
주님의 자비에는 모든 선한 것, 옳은 것, 사랑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정희 실비아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