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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 키우기는 누굴 키웠다는 거야?'
얼마 전 우연히 세무서에서 일할 때의 직속 상사였던 계장님과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 다들 「바람의 딸」 한비야 알지? 내가 키웠잖아" 라는 게
아닙니까? 나 참 기가 막혀서......
저는 그때 대학에 떨어지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근교 세무서에서 일이 끝나자마자 크래식 다방 디제이로 일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날아가야할 판인데,
이 사람은 번번이 별것 아닌 일로 야근을 시키며, '고졸 주제에 클래식은 무슨 클래식이야', `모닝커피를 대령해라`,
심지어 저를 "야!"라고 불렀습니다. " 제 이름은 `야`가 아니라 한비야입니다"라고 하니 그렇게 말대꾸하면 당장
짤라버리겠다며 날마다 제 속을 뒤집어 놓았던 사람입니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리고 힘없는 19살 한비야가 당했던 모욕에 가까운 `지나가는 말`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옛날 일기장을 꺼내 보았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곳곳에 그가 제게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가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 분하고 억울해서 흘린 눈물 자국이 있는 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기자 그러면 나는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30년도 넘은 일이지만 이 사람이 새삼 미웠습니다
그날밤 자기 전에 주님의 기도를 하는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라는
구절에서 뜨끔했습니다.
그런데 용서라니요, 상처 준 사람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상처받은 제가 왜 용서해야 합니까 ?
다음날에도 머릿속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맴돌았습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않고
너그럽게 보아줌`이라죠? 영어로는 `forgive` `완전히`라는 접두오 `for`와 `주다`의 `give` 가 합쳐서 `완전히 주다`라는
뜻이고요. 그러다 퍼뜩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용서는 하는게 아니라 해주는 거구나!` 다시 계장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따져보면 이 분은 사회생활 처음하는
20대 새내기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만남 직한 사람일 뿐입니다. 오히려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겠다며 어금니를 악물고
열심히 살게 해주었으니 미워할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판입니다. 그러니 용서할 수 있는 내가 통 크게 용서해주고
마음의 응어리를 말끔히 털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 (마태 6.14)라고
했습니다 용서해 주면 제 마음이 가벼워지고 더불어 제가 알게 모르게 잘못한 일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얼떨결에 받아온 그분의 명암을 찾아 문자를 보냈습니다
"계장님이 저를 키우신 것 맞아요. 고맙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에서
-- 한 비야 비아 // UN자문위원. 이대초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