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서 봄내음이 나는 듯한 입춘입니다.

24절기 중 첫 번째니 한 해의 맏계절이라고나 할까요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 바로 앞에 있는

김범우의 집터에도 봄기운이 돕니다. 하지만 집은 오간 데 없고 자그마한 푯돌만 서 있습니다

`장악원(掌樂院)터`(음악의 편찬 교육행정을 맡았던 조성왕조 관아자리)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예악을 중시했습니다. 예는 천지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었고, 악은 천지를 화합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김범우(金範禹) 토마스는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784년에 이벽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해 굳은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1785년 봄에 지금은 명동이라 불리는

이 명례방 집에서 이벽, 이승훈, 권일신, 정약진, 정약종, 정약용 등과 함께 전례와 교리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민간의 풍속을 담당하던 금리(禁吏)들이 수상쩍은 이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들이닥쳤덛 겁니다 듣도 보도 못한 성경과 십자고상과 성화들을 보고 놀란 관리들은 즉시 이들을 체포했습니다

이른바 `을사추조 적발사건`이 터져던 겁니다

 

  형조판서 김화진은 이들이 명문가의 양반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훈방했습니다. 그러나, 김범우만은

증인인데다 집주인이라서 옥에 가두고 문초했습니다  천주교가 무슨 학문인지, 성물든은 어디에 쓰는 건지

케물었습니다. 그리곤 `다시 그런 모임을 갖지 않겠노라, 천주교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겠노라 명세하라`며

형별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김범우는 굴하지않고 천주 존제를 증언했습니다. 형조판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더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곤장을 쳐서 귀향 보냈습니다.  그는 귀향지에서도 큰소리로 기도문을 외우고 천주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형벌의 휴유증으로 출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종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천주교회순교자의 맏이가 된 겁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히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히는 행복하다`

! (마테 5.11)는 진복팔단(眞福八端), 즉 참 행복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지요. 

 

  그리고 보니 음악으로 천지를 화합하고자 했던 장악원 자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천주의 뜻에 따라온

천하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부귀틴천, 신분 여하를 가리지 않고 조화롭게 지내며 하느님 나라를 꿈꾸던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김범우의 집터 가까이에 새워진 명동성당이 명례방 공동체를 역사적으로 기념하는

까닭입니다. 첫 절기인 입춘 날, 첫 순교자의 집 대문에 큼지막하게 붙었음직한 입춘축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春光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