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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서울주보 2015.3.29)
2001년 10월 14일 일요일 아침, 미국의 한 수사가 8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에서 수많은 피란민의 목슴을 구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었습니다
라루 선장은 1954년 미국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 마리너스 수도명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에서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연합군을 많은 희생자를 내고 철수중이넜습니다 이때 라루 선장은
선원들에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메데레스 빅토리호는 본래 승무원
50명 정도 태울 수 있는 화물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배에 1만 4천여 명의 피란민을 태워 포화와 기뢰를 뚫고 죽음을
각오한 항해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했고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으며, 오히려 5명의 아기가 새로
태어났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는 "저는 가끔 그 작은 배에 많은 사람 가운데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았을까? 분명히 그날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느님께서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고 믿습니다" 라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각오한 결단이 얼마나 많은 목슴을 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난을 앞두고 공포와 번민에 휩싸여 괴로워하십니다 하느님께 죽음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시지만 당신의 죽음을 피하려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 이가 구원을 얻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시작임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우리 삶의 갖가지 부정과 부조리, 고통과 모순
실패 등으로 희망이 전혀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은 그 깊은 절망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영원한 생명의 희망과 믿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보여주신 생명과 죽음의 삶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자신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자신을 내세우고 앞세우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져 찾을 때,
끊임없이 아집이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세상과 죄와 욕심에 대해 죽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손해보고 바보같은 삶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이 먼져 가신 죽음의 길을 충실히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포기하는
그 희생,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로 올라가는 그 고난에서 부활의 참된 승리는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 허영엽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