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길 // 서울주보 2015.4.19 

 

 

      꽃내음이 물씬 풍기는 대학로는 늘 발고 활기찬 젊은이들로 붐빕니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언덕을 오르자

낙산의 수수한 자연색이 눈에 가득찹니다.  185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의 성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발전해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입니다.  사제양성의 못자리로 예전의 소신학교와 구별하기 위해

대신학교라 부르던 곳입니다.

 

     신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하는 진리관과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대성당 앞으로 갑니다.

탁덕(鐸德)의 본보기인 한국의 최초의 사제이자 한국교회 성직자의 주보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상이

우뚝합니다. 성당에 들어서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은은한 빛이 스며듭니다.  장방형 성당은 단순하면서도

자중한 느낌을 줍니다  굳건하게 보이는 고상 옆 감실 바로 아래,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진 돌함이 있습니다

 

   "김대건!  그대는 몇 나라 말을 할 줄 아는가?"

  "중국어, 프랑스어, 포루트칼어, 라틴어를 아오"  심문하던 관리들이 깜짝 놀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저자는 열여섯 살 때 마카오에 가서 유학하고 온 인재요. 여러나라 말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서양의 학문을

꿰뚫고 있지요  앞으로 조선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보물같은 자입니다" 잠시 후 관리들이 부드러운 낯빛으로

속삭였습니다.

  "그대가 천주를 버린다면 높은 벼슬을 내려 재능을 맘껏 발휘하도록 하겠다.  세상의 온갖 영예와 호사를 누리게

될것이다"  고문을 당해 피땀으로 범벅이 된 김대건 신부님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번개처럼 지나갈  이 세상의 권력과 재산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땅의 백성들이 천주를 알아 영혼을 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오"

 

     김대건 신부님은 결국 1846년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습니다.  1821년에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

양반집에서 태어난 이 땅의 첫 번째 사제는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했습니다.  하느님을 증거하다 치명한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 복자, 부친인 김재준 이냐시오 성인의 뒤를 따른 것이지요  오늘날 성인 사제가 되고자 하는

신학생들과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사제들의 사표(師表)가 된 겁니다.  최민순 신부님이 작사한 대신학교의 교가에서

꿋꿋한 사제의 기상이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 진세를 버렸어라 /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 부르심에 바쳤어라"

 

* 탁덕(鐸德) :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신부의 옛말 *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