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은 `방송 작가`입니다.

   2006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10년이 되었네요. 어느 직업이 소위 `남의 돈 벌어먹는 일` 중에 안 힘든 일이

어디있겠습니까만, 저에게 막내작가 시절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글`쓰려고 와서는

자료찾고 복사하고 이런저런 행정업무나 하고 있는 것도 한심스러운데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으니 서럽기가 오뉴월 폭설 수준이었죠.

 

    그러니 이  시절 저에게 `하느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단임선생님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잊었으니 제 말과 행동이 하느님을 닮았을 리 만무합니다. 히필 그때 유난히 저에게

전화를 자주해서 수없이 봉변을 당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하는 친구에게 제가 한다는 말은 " 그게 내

알바냐?" 였으니 봉변도 그런 봉변이 없었겠죠. 결국, 막내 작가생활 1년도 못 되어 전 그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하느님 곁으로 가지 않는 한 만날 수 없을 만큼 먼거리, 먼 시간으로 잃었습니다.

 

    `잃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제가 `벼랑 끝으로 밀어 버렸다`는 표현이 맞는지 지금도 헷갈립니다. 오랫동안 `우울증`이라는

감기를 앓고 있었던 그 친구가 굶기 싫다고, 쌀 한 톨만 달라고 저를 찾아 왔을 때마다 밥풀 묻은 주걱으로 뺨을 내쳤으니

잃은 게 아니라 밀어 버린 게 맞겠죠. 그 시절, `나도 힘들었다`라고 변명 한다면 그 친구가 이해해 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후회로 남은 것은 곳간을 채우지 못한 일입니다. 그 시절 저의 곳간에 사랑이 없었음은 이해하지만 곳간을

채우려는 노력은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우고자 했으면 채워 주셨을 텐데, 조금이나마 채워 놓았다면 나눠 줄

것이 있었을 텐데.

 

     후회스럽고 또 후회스럽습니다. 아마 평생을 지고 갈 후회일 테죠.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는지라 저는 매일 제 안의 곳간에서 사랑을 야금야금 꺼내 쓰고 있습니다. 저의 곳간은

하수분이 아니라서, 곳간이 빈다 싶으면 어서어서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도 하고 미사도 드리고 성체도 모셔야

하죠. 자칫하면 곳간 비는 줄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곳간 확인도 해야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줄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부지기수로 빈 곳간 박박 긁다 멍해질 때가 많다는 게 슬플 뿐입니다.     

 

 

           - 2015.6.21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에서 -

                              - 서희정 마리아 ( EBS 방송작가) -

 

                                       - 교리상식 -

                                     사제는 왜 결혼하지 않을까요?

 

                사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제품을 받을 때부터 주교에게 순명하며

               좋은 목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배우자가 없이

               즉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는 뜻의 약속이 바로

              `독신서약`입니다. 사제의 독신 생활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평생 동안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서만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 예비 신자 궁금증 // 가톨릭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