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 속에 챙겨두었던 무엇인가를 꺼내어 음미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11월 `위령 성월`을 맞아 문득 새롭게 다가오는 기억이 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서 배운, 아침에 눈뜨자마자

외치는 기도입니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친구가 " 주님을 찬미합시다."라고 외치면 꿈결 속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삼십여년 전 어린 시절, 일어나자마자 해야 한다고 일러주시기에 바쳤던 찬미의 기도가 이제는 조금씩 그

의미를 더해갑니다.  하루를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하루 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감사를 드릴 일임을 더욱 깊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서로 그 길이 다르지만 주어진 시간, 제한된 날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같은 종이지만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는 것처럼, 사람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단 한 번의 생애를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남겨진 향내가 다를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여행을 하더라도 집이

그리워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안도감을 느끼게 되듯, 매일의 삶 안에서 하늘 나라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소중한 가족이나 친지뿐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께로 돌아간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전통적으로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나 그분의 기일에 `위령 기도`를 바치거나 `위령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 기도 안에서 서로 한 가족임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한 사람의 이 세상 마지막에 함께하고. 또

이미 돌아간 사람을 자비로우신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아울러 기도 안에서, 기도를 바치며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1티모 6.7)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빈손으로 가지만, 신앙적으로는 충만해져서

가야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미완성의 인생이지만, 하늘 나라에서의 완성을 준비하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처럼 "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던지 죽던지

주님의 것입니다." (로마 14.8)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새 날을 청하면서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5.11호

                                    조성풍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