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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016.9.18 말씀의 이삭
이화은 요안나 // 시인
천주교 신자들의 심성을 빗댄 풍자 한 토막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습니다. 누구의 안내 없이 성당에 처음 나온 한 분이 어색한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는데 마침 비가 왔다고 합니다. 미리 우산을 준비해 온 신자들이 삼삼오오 빗속으로 사라지고
우산이 없어 난감한 그분 앞에 함께 우산을 쓰자는 분이 계셨답니다. 역시 천주교 신자는 다른 것 같다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 왈, 자기도 오늘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이라고 하셨다는군요. 조용하고 점잖은 종교라는 미명 아래 무심하고 인색한 우리
신자들을 정확히 꼬집은 뒷담화겠지요.
바로 곁에서 비 맞고 계신 예수님을 두고 우리는 우산 속 세상에 안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 주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산 속의 비맞지 않는 세상에 갇혀 우산 바깥늬 광활한 세상을 모두 포기한 셈이지요.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 이 첫마음에서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전에 다니던 교우들과 헤어지고 낯선 성당으로 전입하던 차에 누가 그러더군요. 이럴 때 쉬어가야 한다고요.
말씀인즉 래지오 활돈을 이럴 때 쉬지 않으면 평생 쉴 수가 없다고요. 아무도 내가 레지오 단원인 걸 모르는 곳에서 함께
활동하자고 권유하는 사람도 없으니 숨기에 안성맞춤인 시기라는 예기였지요. 귀가 달콤한 그 말에 서슴없이 활동을 중단하고
잠시!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30년이었습니다.
선거의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한 순간에 혹 간다`
첨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짝 미사 참례만 하는 일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초상집과 냉담자들을 찾아다니는 일도 없으니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듯했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남아 돌아가는 시간은 제게 빈손만 남겨주었습니다. 보람도 기쁨도 없는
시간 이었습니다. 정말 한 순간에 혹 갔습니다. 어느새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도 지나버렸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 요안나야 너 어디 있니?"
수백 번을 부르셨을 텐데 한 번 귀 막으면 들리지 않지요. 보이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하던 그 첫 마음에서 한참 멀어져 곁에 비 맞는 예수님을 두고도 모름 척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매끄러운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평생을 돌고 또 돌았던 셈입니다.
"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하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내 신앙 성적표는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부끄러운 알몸입니다.
그러나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랑한 분이 그분이시니 예수님은 아무래도 내 첫사랑이 맞겠지요?
이런 어슬픈 고백에도 주님은 안 속는 척, 몇 번이고 또 속아주시겠지요?
이화은 시인의 시 한편 옮김
은밀한 자두
(이화은)
입구를 감추어둔 무릉도원처럼
동네에서 단 하나뿐인
자두밭은 물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었네
개 짖는 소리는 온통
날카로운 이빨 자국 투성이여서
사내아이들은 산란기의 개구리들처럼 밤마다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네
어둠이 수초처럼 뒤엉킨 연못을 건너오는 동안
자두는 저 혼자 탱탱 배가 불렀고
여자가 되는 줄도 모르고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이 훔쳐오는 붉은 열매를 깨물었네
시고 떫은 시간의 어디쯤 앉아
달고 무른 과육을 빨아 먹으며
덜 자란 사내들의 사내아이를 하나씩
낳아주고도 싶었네
자두를 훔치기 위해 알몸으로 목숨을 건너는
어떤 종족의 생몰기도 이제 없고
늙은 자두밭은 세월에 터를 팔았다 하네
예전보다 신색神色이 못하다는 연못은
그래도 자주, 가끔, 안부를 전해 오는데
풍문의 귀를 접은 매듭 편지 한 장
전하지 못하였지만
무릉도원이 없는 자두는
은밀한 자두 맛이 나지 않고 한생이
한 저녁만큼 더디 간다는 생각을 오래 하네
**이화은: 경북 진량 출생. 1991년 《월간문학》신인상 등단.
시집:『이 시대의 이별법』『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미간』.
(이화은 시집『미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