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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016.10.30 //생명의 말씀
손경락 사도요한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마트에서 물건을 샀습니다. 사천 원짜리를 사고 오천 원을 냈는데, 직원이 거스름돈으로 천 원이 아니라 오천 원 지폐를 내줬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 돌려주지 않았을 때, 가져간 액수의 4배를 갚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면 어떨까요?
복음의 자케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스스로에게 선언합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옛날 다윗이 나단에게 가난한 이의 아끼는 양을 빼앗아 자기 손님을 대접한 부자 이야기를 듣고, 그 양을 네 곱절로 갚게 하겠다며
분개한 장면이 있었지요. 4배로 갚는 것은 도둑질에 대한 징벌이라고 합니다. 훔친 것의 3배를 벌금으로 내서 총 4배로 갚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나 이집트에도 이와 비슷한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캐오는 지금 기회가 일을 때마다 쓱싹 헤왔던 것이
도둑질이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여태껏 그는 기회가 된다면야 할법한 일이라고, 세리라는 그 자리는 원래 그래 가면서 돈 버는
것이라고 말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앞에서 아제 그렇게 안하겠다고, 그렇게 하는 것은 도둑질과 똑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캐오를 보시고 예수님도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하고 화답하십니다.
예수님과 밥을 함께 먹었다고 해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그건 예전에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도 처음에 예수님이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실 때는 이런 결심까진 못하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두사람의 내적인 공동작업은 시작된 것이지요. 마침내 자케오가 결단하는 그때 예수님도 그가 구원받을 \사람임을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자케오가 결심한 것은 열심히 선행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 다름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번의 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욱 민감한 양심을 갖고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다운 사람, 구원의 대열에 든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해야 것은 하고, 안해도 되는 것은 안 하는 데에 머무는 것으로 충분히 그리스도인 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들은 쉽게 저지를 비리나 부정, 책임회피, 거짓말, 눈속임, 말 바꾸기 등, 이런 것들에 대한 민감한 양심을 갖고 작은 악도 큰
악처럼 피하려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 답지 않을까요? 마트 직원이 잘못 준 거스름돈도 내 돈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실수한 것이니
그 직원이 책임지고 물어넣으면 될까요? `자캐오`라는 이름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자카리야`를 줄인 이름이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고 그분과 같은 식탁에서 미사 때마다 함께 먹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고
어떤 약속을 드리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