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2017.1.22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 신부님! 왜 사제가 되었습니까?"  사제들이 가끔 듣는 질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의 경우에는 대단한 체험이나 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운명이겠죠?"라고 반문을 합니다.  

형님 신부님은 초등학교 때 성당에서 미사 복사를 열심히 하면서 복사단 선배들과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그 선배들 중 많은 이가

소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형님도 선배들을 따라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나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주말이면 형을 면회한다고 가족들과 함께 신학교에 들락거렸습니다. 방학 때면 만나는 형의 친구들은 모두

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진로를 두고 고민을 할 때 형은 나에게 `갈매기의 꿈`이란 책을 슬며시 건네주었습니다.

나는 그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의 삶에 매료되어 결국 신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언젠가 내가 동생 신부에게 "넌 왜 신학교에 들어 갔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방학 때 신학생 형님 둘이서만 성당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때면 자기만 소외되는 것 같고 질투(?)가 나서..."라는 익살스러운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나의 형제들이 체험한 부르심의 계기는 모두 소소합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부르시는 제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그저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는 부르심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면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아 뿐 아니라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응답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업인 고기잡이 도구와 배와 그물을 다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부모, 형제, 친척까지 다 버리고 무작정 예수님을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르심을 주저할 수 없고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어쩌면 주님의 부르심에 두려움과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테 16.24)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모든 것, 나 자신까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있습니까?

 어쩌면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고 계실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