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길 // 신앙선조의 숨결을 따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무더위가 꺾이고 청량한 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공장들 사이의 좁은 길을 한참 들어가자 넓은 평지가 나타나네요.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수원교구의 은이 성지입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지인이 여간해서는 찾을 수 없겠군요.

숨어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은이(隱里)라 부르는 까닭을 알만하네요. 이 성지는 1836년 김재복(대건) 소년이 성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발탁된 곳입니다.  1821년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우르술라를 따라 이 근처의 골배마실로 이주한 성 감대건 안드레아의 숨결이 배어있는 곳이지요.

 

 `모방 신부가 세례 받는 이들의 이마에 차례로 십자를 그었다.  이어 이마에 물을 세번 부었다. 순간 재복은 자기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비로서 천주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는 기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 재복이 혀를 내밀어 신부가 주는 밀떡을 받았다.  밀떡이 혀에 착 달라 붙었다. 포도주의 알싸하면서 향긋한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게 바로 천주의 외아들인 예수의 몸과 피라고 생각하니 온몸이 달아 오르는 듯했다. ... 목줄기를 타고 뜨거운 기운이 흘러 내려갔다. 티끌이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듯했다. 재복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늘에서 천주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가운데 음성이 들려왔다는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김문태 /세 신학생 이야기/ 바오로딸 2012 중에서)

 

   김대건은 세례 받은 해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뒤, 1845년 중국 상해의 김가항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하였습니다. 그는 은이 공소에 머무르면서 용인, 이천, 안성 등지를 다니며 사목하였지요. 이듬해 4월 13일 이곳에서 마지막 미사를 드리고, 미스트르 신부와 토마스 최양업 부제의 입국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두 달 후 인천 앞바다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치명하였지요.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의 안배에 맡기고 주 성모께 기구하길 잊지 마시오"라는 말을 남기고요.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몸을 숨기고 살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원만한(?) 사회 생활을 위하여 신앙을 숨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때로는 성호도 긋지 않고, 식사 전 후 기도도 생략하기도 하니 말ㄹ입니다. 작년에 은이 성지에 복원된 소박하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김가향성당에서 16세에 세례 받고 26세에 순교한 성인 신부의 짧고도 긴 숨결을 느껴봅니다.순례자가 세례 받던 소년 시절의 신심을 되세기면서요.

 

                                              2017년9월17일 서울 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