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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있네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2. 내 갈 길 아득히 멀고 나의 힘 기진한데 내본향 집을 향하여 가는 길 비추소서
메마른 우리 영혼에 새생명 주옵시며 주안에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의 이삭
2017.10.1 서울주보에서
김나영 요셉피나 // 작가
주일학교 동창인 신학생이 연극을 하는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가 있는 회화동 기숙사에서 내려다보면 대학로 밤거리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 같다고. 환락의 불을 반짝거리며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며 휘청거리는 대학로의 밤거리가 신학생 눈에 그리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대학로를 직장 삼아 오간 것이 벌써 20년, 작가가 되어서만 20년이니 관객으로,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드나들기 시작한 세월까지 합하면 대략 30년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1세기 대도시의 소돔은 멸망하지 않고 나날이 번성하여 더욱더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규율 엄격한 신학교와 고즈늑한 혜화동 성당 바로 곁에서 말입니다.
제 신앙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유혹과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성당보다 재미난 일이 많았고 멀리 계신 하느님보다는 가까이 있는 동료들의 위로가 살갑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공연 핑계로 주일을 지키지 못해도 그만, 1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연명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런저런 인생의 시련이 다시금 저를 주님 앞으로 데려왔을 때, 하늘을 보면 뒷목이 아플 만큼 땅에 고개를 처밖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주일을 밥 먹듯 걸러도, 기도라곤 식전기도 밖에 안 해도 저는 여전히 주님 포도나무에 간당간당 매달려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놓지 않으셨기에.
오후 세 시, 알람이 울리면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님 자비의 기도를 바칩니다. 양해를 구하기 힘든 사람과 있거나 중요한 미팅 자리가 아닌 이상 장소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간혹 점심 반주가 이어지며 낮술이 될 때가 있는데 술자리에서도 묵주를 꺼내 중얼중얼 기도를 바치는 저에게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며 조롱 섞인 말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은 기도 중인 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낮춰줍니다. 가끔은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넌지시 건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비의 기도를 바친 지 3년여. 저는 지금 소돔과 고모라의 외계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면서 가톨릭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릴 때 받았던 세레를 기억해내기도 합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보잘 것없는 제 기도를 통해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응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