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2018년 2월 11일 서울주보에서

                                       정희선 카타리나//덕성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학의 테두리 안에서 오로지 경영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한 평생을 지낸 저는 정년퇴임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주님의 품 안에서 열기로 하였습니다. 그 길로써 '가영시아'를 선택하였습니다. '가영시아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에서 운영하는 young-senior(55세- 67세) 신자들을 위한 2년제 학교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돕기도 하지만, 아홉게의 두레가있어 원하는 취미 분야를 배우고 익힐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사진을 만났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는 명동대성당 경내에서 주님의은총을 만끽하며 지냈습니다. 아침 10시에 미사를 드리고 교양강의 듣고 오후에는 새로운 취미로 사진을 공부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 깊은 명동대성당의 아름답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이만저만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너나없이 바쁜 생활을 하지만 하루를 온전히 떼어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2년간의 '가여이아' 과정을 거친 후 지금은 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흔치 않게 혼자 있던 밤이었습니다. 방 안에서 내 일에 몰두하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거실로 나갔을 때 온 집안이 캄캄했습니다.

그때 잠시 맛보았던 적막함, 외로움, 매일이 그렇다면 어떨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쓸쓸하고 외로운 날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권태롭고 무료한 날들도 닥쳐옵니다. 아직 건강할 때 미리 이런 날들에 대비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가영시아' 덕분에 저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잘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맛 들이면서 그 안에서 영원히 행복할 날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틈틈이 기도를 하고 밤이면 정해진 시간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성경을 읽습니다.

'말씀과 함께'의 성경통독 계획표에 따라 읽는데, 일 년이면 성경을 한 바퀴 다 읽게 됩니다.  인생의 노을이 지는 시기에 우리 부부가 이런 뜻밖의 길을 통해 함께 누리는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될 줄 우리는 일찍이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다시 읽기 시작한 신약 성경은 작년과는 다른 깊이로 새로운 깨우침을 줍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집에서 성경을 가까이하며 읽는 것은 오래전 여고 동창들 십여 명과 함께 했던 성서 백주간의 경험 덕분입니다. 지급도 동창회의 가톨릭 모임이 이끄는 정기적 강의와 미사, 피정 그리고 매일 카톡으로 전달받는 신부님의 북상글이 저의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깨어 있다면 하느님께로 가는 길도 언제나 다양하게 열려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