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권종오  라파엘//SBS 보도국 스포츠부장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이 무엇일까요? 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수에게 보복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어떻게 사랑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보다 약 500년 전에 살았던 중국의 노자는 `보원이덕`(報怨以德) 즉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노자보다 조금 뒤에 태어난 공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은덕으로 원수를 갚으면 나에게 잘해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겠느냐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직보원, 이덕보덕`(以直報怨, 以徳報德) 즉 원수에게는 올바른 원칙으로 상대하고 나에게 덕을 베푼 사람에게는 은덕으로 보답하라고 주장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원수에게까지 덕을 베풀면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말과 비슷한 정신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우리 속담입니다. 미운 사람에게 떡을 오히려 하나 더 주는 것은 공자의 말처럼 형평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눈길 한번 주기도 싫은데 떡을 하나 더 주다니요?

누구에게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면  B는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간파한 뒤 A 에게 역시 나쁜 감정을 갖습니다. 인지상정이지요. 그런 나쁜 감정이 쌓이고 악화되면 감당하기 힘든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그 이성을 1초 만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수에게 더 잘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를 미연에 방지해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저도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실천한 적은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한 적도 미운 사람에게  떡을 하나 더 준 적도 없습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증명인 셈이지요.  <주님의 기도>에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떡 하나를 더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의 지혜로는 답이 도무지 안 나와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4,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