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7  서울주보

              '가톨릭 성인의 삶'에서

                              글 서희정 마리아

 

      이제 더 이상 고해성사를 받을 힘조차 없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죄스러움보다 좌절감이 더 크게 나를 지배해왔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이런 나에게 또 고해성사를 주실까?   `만약 단 한 명의 신자라도 성당에 왔다가 고해 사제가 없어서 되돌아간다면, 고귀한 한 영혼이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던 신부님은 오늘도 한  영혼이라도 놓칠세라, 누구든지 신부님을 찾을 수 있도록 성당 마당을 서성며 기도하고 계셨다. 신부님이 보이자 내 눈에는 참아왔던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매번 나에게 고해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에 대한 죄스러움이 하염없아 흘렀다.

 

  " 신부님! 이 죄에서 벗어날 거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계속 고해성사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짜피 또 죄를 지을 텐데요."

 " 자신을 믿지 말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세요. 그럼, 분명히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실 테니 이제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하느님과 함께인 사람은 슬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신부님을 처음 봤을 때도 신부님은 지금처럼 웃고 계셨다. 사업가의 길을 포기하고 우리 동네에 오셔서 가난한 이들,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하시면서 늘 웃으셨다. 그렇게 기쁨 속에 살던 신부님은 얼마 전, 36살의 나이에 사제서품을 받으셨고 오라트리오회(기도의 집)라는 공동체를 이끌기 시작하셨다.

 

   그날 이 후, 나 또한 오라트리오회에서 신부님과 신부님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하고 , 때론 산책을 하면서  기쁨 속에 살고 있다. 그러자 차츰, 나의 고질병과도 같았던 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오라트리오회에 머물렀고 신부님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날로 늘어 갔다.  대 음악가임 벨리스트리나, 종교인인 이냐시오, 카롤로는 물론이고 교황 레로 11세까지도 필립보 네리 신부님을 찾았다. 신부님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어께가 의쓱거리던 어느 날, 신부님 방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다.

   " 거두어 주십시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은총의 물결을 그만 거두어 주십시오"

 

   며칠 후, 신부님은 수염을 반쪽만 깍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 우수광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모두 알고 있엇다.  끊임없이 겸손하고자 하시는 신부님의 마음을, 자신보다는 하느님께서 높아지셔야 함을 알려주고자 하심을 말이다.  늘 기쁨과 유모로 사람들을 웃게 하시는 신부님이지만 그 누구도 신부님을 우스운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기쁨의 근원을 알고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