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렇게 살다가
한 여름밤을 뜨겁게 사랑으로 가득 채우다
모두들 돌아간 그 길목으로 돌아설 때
그냥 무심코 피어날까.
저 노을은 그래도 무심코 피어날까


그러면 내 사랑은
무게도 형체도 없는 한 점 빛깔로나 남아서
어느 언덕바지에
풀잎을 살리는 연초록이라도 되는가.


밤새워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던
우리 엄마는
죽어서 바늘 구멍만한 자리라도 차지할까.


가을은
수면이 육신 속으로 스며들 듯
나를, 시들은 잔디 사이
고요한 모랫길로 끄을고 가는데
끄을려 가는 발자국에 진탕물이라도 고여
내가 지나간 표지라도 되었으면……


꿈은 시들어
우리를 살리는 다리가 되나.
땅 속에 묻혀드는
한 가닥 향기로나 남아 있다.


살아서 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모든 것이 되어
죽어서 모두들 돌아간 그 길목으로 돌아서면
가을 밤 하늘에
예사로 하나 둘 별이 돋을까,
무심코 별은 빛날까.